우리는 보통..다르마를 경(Sutra)과 속(Tantra)으로 나눕니다.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다르마를 이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겁니다..
이것은..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라 할수도 있을 겁니다..
닝마는..붓다다르마를 9부승으로 나눕니다..
견해는 바탕,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바탕---과정---열매 .. 이라는 이 세 가지 논리를 따릅니다..
경(Sutra)에서는 바탕과 열매라는 두 지점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다..
바탕이 곧 열매인 것은 아니지요..
이것이 경(Sutra)과 속(Tantra)을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셈이구요~~
상당히 복잡한듯이 보이는... 9부승의 체계가 존재하는 것도
바탕과 결과에 대한 미세한 견해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탕, 과정, 열매는... 하나인가요.. 셋인가요?
티벳불교에는 무상요가 딴뜨라~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르마 세계에서 티벳불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입니다..
이 무상요가 딴뜨라는 티벳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세계이고~~
9부승 전체에서 가장 상위에 랭크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이 무상 요가 딴뜨라는
까귀, 겔룩 등에서는 부딴뜨라,모딴뜨라, 불이딴뜨라~ 로 분류됩니다..
닝마전승에서는 마하, 아누, 아띠요가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다르마의 산 정상에는
이러한 아띠요가라는 백설이 태양의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 아띠요가는 달리 족첸이라 부릅니다...
사꺄무니 붓다 구경 열반 후 28년에...
오디야나와 말라야 산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집니다...
가랍 도르제(아디 찌따)와 금강수(바즈라빠니)에 의해.. 인간계에서 벌어진 일이죠~
아띠요가(족첸)는 가랍도르제께서 만주시리미뜨라에게 처음 전한 것이고..
아누요가와 마하요가는 금강수께서 비말라끼르띠(유마힐)에게 처음 전한 전승입니다..
비말라끼르띠는 우리 일반 불자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존재입니다..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힐 거사~~~ 그가 비말라끼르띠입니다..
그가 인간계에서...마하요가, 아누요가의 물꼬를 터놓았군요~~
아띠요가에 속하는 족첸의 근본경전(속전)은.. 6백 4십만 게송이랍니다~
붓다께서 20년 설했다는 반야부 경전.. 어마어마하게 방대하다는...
그 중에서 방대하기로 으뜸인 10만송 반야경은.. 그에 비하면..거의 팜플렛 수준이네요..
어느 속전(Tantra)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생기차제인 마하요가는 모든 다르마의 바탕과 같고..
원만차제인 아누요가는 모든 다르마의 과정과 같고..
대원만차제인 아띠요가는 모든 다르마의 요결과 같다..
`쎔니 ~ㅇ알쏘(Semnyid Ngalso)`에서.. 롱첸 랍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하요가는 주로 풍기, 생기차제, 수승한 방편에 관련되어 있다..
아누요가는 주로 명점(정수),원만차제, 지혜에 관련되어 있다..
아띠요가는 모든 것, 비이원성, 원초지혜와 관련되어 있다..
`빨첸 샐룽(Palchen Zhalung)`에서.. 직메 링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족첸(아띠요가)은 지성이 가장 뛰어난 자를 위한 것이고..
아누요가는 지성이 보통인 자를 위한 것이고..
마하요가는 지성이 떨어지는 자를 위한 것이다..
점차적으로 개발하는..마하요가..이것은 모든 딴뜨라의 바탕이다..
일순간에 완성하는..아누 요가..이것은 모든 딴뜨라의 과정이다..
모든 사유작용에서 벗어나 있는 족첸..이것은 모든 딴뜨라의 결과이다..
다르마의 두 가지 메카니즘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꺄무니 붓다께서 소개한 사마따, 위빠사나입니다..
모든 수행은 예외없이 사마따와 위빠사나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육법요가와 같은 방편도 거기에서 벗어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말에 동의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티벳불교에도 사마따, 위빠사나가 있다~~가 아니고..
`티벳불교의 모든 수행은 사마따 위빠사나에 지나지 않는다`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생리적 모습 그 자체로보면.. 사마따와 위빠사나는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다르마 수행에 적용할 때.. 바탕과 결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그 적용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요소에 대한 견해의 차이...적용하는 방법의 차이가..여러 전승을 만들고..
다르마를 둘로 나누거나..9부승으로 나누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승도, 대승도, 금강승도.. 이 두 메카니즘에 대한 견해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것이... 마하,아누, 아띠라는 세 가지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꺄무니 붓다께서 소개한 사마따, 위빠사나입니다..
모든 수행은 예외없이 사마따와 위빠사나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육법요가와 같은 방편도 거기에서 벗어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말에 동의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티벳불교에도 사마따, 위빠사나가 있다~~가 아니고..
`티벳불교의 모든 수행은 사마따 위빠사나에 지나지 않는다`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생리적 모습 그 자체로보면.. 사마따와 위빠사나는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다르마 수행에 적용할 때.. 바탕과 결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그 적용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요소에 대한 견해의 차이...적용하는 방법의 차이가..여러 전승을 만들고..
다르마를 둘로 나누거나..9부승으로 나누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승도, 대승도, 금강승도.. 이 두 메카니즘에 대한 견해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것이... 마하,아누, 아띠라는 세 가지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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