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2, 2011

내 나이 열아홉일 때였어요..



내 나이 아직 어린 열아홉일 때였어요..
`남아메리카 동굴 속의 유적` 같은 책을 책상 밑에 숨기고..
오전에 주어놓은  붉게 물든 잎을 책갈피 사이에서 만지작 거리곤 하던 어느날..  
학교 가을 축제의 날에..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들려주기 위해...
나는 그림 전시장에 서 있었습니다...
아직..내게 그림 안내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 우두커니 서있는데..
어린 여학생 하나가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왔어요...
마치 점 찍어논 것처럼... 분명하게... 저에게로 곧장...
그러고는 말합니다..
"오빠~~ 그림 안내 좀 해 주시겠어요..!!
난.. 꼭 오빠가 안내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안내를 맡았으니...몇마디 주절거리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 때 내가 그에게 처음 건넨 말의 요점은 이런거였습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은..어느 순간에...
그림의 대상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사물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를 통해...조금씩 자신의 마음으로 본 세계를 확장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사람이 보는 사물이란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했던 말과 말 사이에.. 그 여학생이 한마디씩 자기의견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것은 짧지만 매우 날카롭고.. 자극적이었고...나를 곤궁에 빠트렸습니다.. 
말이 이어질수록.. 나의 말은 점점 더 휘청거리고..점점 수심이 깊어지게 됩니다..
전시장을 반쯤 돌았을 때... 나는 내가그린 그림 앞에 서있었습니다...
나는 휘청거리는 나의 말을 바로 세우려는듯이... 애써 몇마디 보태보았습니다..
그러나 흩어짐없이 정갈하게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냥 무너지고 맙니다..
갈데가 없어지고...나의 자존감은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죠...
촛점이 흐려지고...아무 생각도 할수 없고..나무토막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시장통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어지럽게 오고가고 있었을테지만...
그것은 비오는 날의 창밖 풍경보다 더 뿌옇게보이고...
아주 오랫동안 넋을 잃고 그렇게 서있기만 했죠...
한참만에..정신을 차려..저의 우스꽝스런 모양으로 서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한가지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가버렸나..?"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고.. 고개도..눈동자도 아직 돌리지 않았지만...
고정된 망막 한쪽 끝으로.. 
아직 가지않고 문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내가 그를 보고있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기다렸다는듯이 두손을 모으고... 정중하게..천천히..깊히 수구려 내게 인사를 하고는..
바람이 빠져나가듯이 가볍고 빠르게 문밖으로 사라졌습니다..
..................
그게 내가 그를 본 마지막입니다...
나는 그 때 들은 충고들을 어렴픗히 기억합니다..
기억이라기보단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내 그림앞에서 무척 애를 쓰고있을 때..그는 이런식으로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음의 노력을 멈추고.. 여길 봐봐..!

지금이순간에 머무르도록 해..!

마음으로 궁리하는 이것저것을 그만두고...그냥 봐봐...

거기에 본질이 있어..

오빠같은 붓쟁이가 그러려 하듯이...

마음이 보고...본 그 세상을 표현하거나...만들어가려하더라도...

그로인해...지금보다 뭔가 고결해지거나 나아지는 것은 없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


내 나이..스무살에..
삶의 의미를 알고싶어...새로운 여정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의 말에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난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여기 이 그림 안의 모습은 그를 닮은 것 같습니다..


아직 애띤 모습은..
그가 16세의 변하지 않는 몸을 지닌 다끼니와 같음을...

두 날개가 달렸음은... 
세속의 오염된 땅을 박차고  열반의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음을...

머리에 길다란 촉수가 달렸음은... 
지금 존재하고 앞으로 나타나게될 시공의 움직임을 명료하게 자각하고 있음을..

눈을 감고있고..긴 속눈섭을 휘날리는 것은...
항상 현상 너머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고... 지극히 높은 견해를 지녔음을..

나뭇잎으로 가슴과 음부만을 가림은
거추장스러운 인습에 의지하지않고.. 본래 갖춘 자생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꽃을 깔고 앉음은...
그의 행위가 온갖 고귀한 아름다움으로 장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

Sunday, November 20, 2011

나모 붓다


부처님의 마음이 형상을 띠고 나타난 세 불탑 중의 하나..
`나모 붓다`...
그것은 까트만두 경계 높은 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셋 중의 나머지 둘은...스와얌부나트와 보다나트입니다...
보다나트는 자룽카소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 나모붓다에서 샤꺄무니 붓다께서는..
자신의 몸을 굶주린 암 호랑이에게 주셨으며...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붓다가 될 원인을 지으셨습니다...
이곳을 순례하는 자가..
세번 돌며 지극한 공경을 올리면.. 삼악도의 문을 닫는다 했으니..
그 곳에 지금...`딱모 루진`이라는 탑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Saturday, November 19, 2011

Brilliant Moon--딜고켄체 린포체 생애 이야기

지금 소개하는..이 것은 
네뗀 촉링 린포체(Neten Chokling)께서 만드신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
20세기의 성취자.. 딜고켄체 린포체의 생애 이야기.. 
`브릴리언트 문(Brilliant Moon)` 동영상입니다..

1시간 가량의 전체 동영상이 제공되는 것이 있어 여기에 올립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귀한 사진들도 보입니다...

`Brilliant Moon`은 그의 법명 중 하나입니다..
딜고 켄체 린포체에겐 여러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나서 가르침을 받은 스승이  여럿이라는 이야기죠...
그의 삶의 특성이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맨 먼저 받은 이름은 `따시 뺄조ㄹ`... 존경하는 미빰 린포체로부터 받은 이름입니다..
그 다음에는   `규르메 떽촉 뗀뻬 갤쩬`...셰첸 갤짭 린포체로부터 받은 이름입니다..
그 다음에는 `랍쎌 다와(브릴리언트 문)`.. 켄뽀 셍가로부터 받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외쎌 뚤뻬 도르제.. 뻬마 도~ㅇ악 링빠는  떼르뙨으로서의  그의 이름입니다..

브릴리언트 문...
이 이름은 이렇게 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

``사진으로 다시 보는 Brilliant Moon``

딜고 켄체 린포체의 인상적인 사진 몇장을 연결해보았습니다..
특히 저는 여기에서..
딜고 켄체 린포체의 다비식 광경을 담은 사진을 몇장 보여드리려 합니다..
여기에 올린 사진 몇장이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다른데서 보지못한 어떤 깊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사진이 가진 매력이죠...

사진은 대부분 정보가 없습니다..
사진에 정보를 연결시키는 플랫폼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렵고...
작은 정보연결에도 의미를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죠..
그래서... 사진을 체계적으로 정보화한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진검색 혹은 사물검색이.. 검색의 주류를 이룰 것 같습니다..


딜고 켄체 린포체의 탄생지.. 캄지방 데르게에 있는 덴꼭 마을..
이 곳에서 그는 1910년에 태어납니다..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미빰 린포체를 만납니다...
미빰 린포체는..이 비범한 아이의 탄생을 미리 알리며...
문수사리의 가피끈과 가피환을 어머니에게 줍니다..
그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의 젖을 물리기도 전에..
문수사리의 가피환을 이용하여..
한 라마가 아이의 혀바닥에 문수사리의 종자자 `디`를 써줍니다..




이 때.. 미빰 린포체는 깔라차끄라 구전 법회를 열고 있었고..
그는 태어나자마자 3일만에.. 미빰 린포체를 찾아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린포체는 아이에게 `따시 뺄조르`라는 이름을 주고..
아이의 머리카락이 눈밑까지 덮은 것을 보고...
자르지 말고..문수동자처럼 다섯갈래 상투로 묶어주라 하였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시 한번 미빰 린포체를 찾았고.. 문수사리 관정을 받게됩니다..
딜고 켄쩨께서는 나중에.. 이에 대해 이렇게 술회합니다..
``그가 준 이 관정은..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가 이제 겨우 세 살이었을 때.. 미빰 린포체는 세상을 떠나십니다..
그러나.. 미빰 린포체의 다비식에 참석하신 `셰첸 갤짭 린포체`와 인연이 맺어지게 되며..
그와의 깊은 인연은 열일곱살 때까지 14년간 이어집니다..
셰첸 갤짭 린포체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으며..마음의 본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열한 살에 `켄뽀 셍가`를 만나게되며..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수행합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랍쎌 다와(Brilliant Moon)`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셰첸 걀짭 린포체는 이제 열세살인 그를.. 잠양켄체 왕뽀의 마음의 화신으로 천명하였으며...
셰첸 사원의 새 주인으로 앉히게 됩니다...
그리고 붓다의 몸과 말과 마음과 성품과 불사에 해당하는 선물을 그에게 줍니다..
붓다의 몸의 상징으로..
미빰 린포체..잠양 켄쩨 왕뽀께서 갖고 계신던 사꺄무니 불상을 주었고..
붓다의 말의 상징으로.. 미빰 린포체..잠양 켄쩨 왕뽀 두 분의 저술을 주었으며..
마음의 상징으로.. 미빰 린포체께서 평생 사용하신 금강저와 요령을 주었고..
성품의 상징으로.. 관정수여하는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으며..
불사의 상징으로.. 미빰 린포체의 봉인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규르메 떽촉 뗀뻬 갤쩬`이라는 법명을  주게 됩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인연은 없으니..
그는 다비식에서 만난 그 스승.. 셰첸 갤짭 린포체의 죽음을 다시 보게됩니다..
스승의 죽음은 사물의 본성이 무상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로인해...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살 때부터..서른살까지
불퇴전의 마음으로..13년간 무문관 수행을 계속합니다..
그의 무문관은 동굴 입구를 봉쇄하여..완전한 암흑속에서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양띠 낙뽀`라 부르는 이러한 형태의 무문관 수행을 하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닝마에서도... 족첸의 수승한 단계에 도달한자가.. 무지개신을 이룰 목적으로..
취하게 되는 족첸의 가장 수승하고 비밀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수행을 한 사람으로는..
115세까지 살면서 50년간 이 수행을 했으며..무지개신을 성취한..
잠양 켄쩨 왕뽀의 여제자.. `아유 칸도 도르제 뺄된(1839~1953)`이 유명합니다..


이 사진은 가장 오래된 사진이며..
그가 스무살 이전에 찍은 사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물 다섯이었다고도 합니다.....
때묻지 않은 만년설의 순수한 빛 같은  수행자...
어두운 암굴을 오랫동안 스스로 비춘 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기에..
그 가치가 큰 사진이라 생각됩니다..

그의 은둔 수행을 멈추게 한 것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라는 스승..`잠양 켄쩨 최끼 로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근본스승인 셰첸 갤짭 린포체를 만난 이후..
두번째 근본스승인..`잠양 켄쩨 최끼 로되`를 만나.. 운명의 가치를 키워갑니다...


이 것은 1950년에 암도지방.. 
소홍 라까에 있는  레꽁 사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
`잠괸 꽁뛸 린포체`의 5대보장 중의 하나인
`린첸 떼르죄` 관정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린첸 떼르죄`는 떼르마의 역사상.. 발견된 모든 떼르마를 한곳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잠양켄쩨 왕뽀께서 십 수년간의 발품을 팔아 이룬 업적입니다..
그 업적에... 어울리는 색깔.. 로직을 입히는 작업은 잠괸 꽁뛸께서 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5대보장`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5대보장은 `잠괸 꽁뛸` 혼자의 업적이 아닙니다.
특히 `린첸 떼르죄`는 5대 보장 가운데.. 진정한 핵심입니다...
이 관정은 쉽게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자체가  최소 4개월에서 6개월이 걸리는 큰 관정이기 때문이죠..


1950년에 암도지방.. 소홍 라까에 있는  레꽁 사원에서 찍은 사진..
그는 스승이신.. 잠양 켄쩨 최끼 로되의 뜻을 받들어..
가족과 함께 암도에 있는 이 곳으로 오게 되었고..
1천 9백명이나 되는 ~ㅇ악빠(닝마의 요기들 집단)들에게..
`린첸 떼르죄`관정을 주게됩니다..
그는 1년 동안 여기에 머무르며..
 `샵까르 쪽둑 랑될`이 살았던 그 언덕에 앉아..여러가지 가르침을 주게 됩니다..
이곳은 특별히..빠뛸 린포체의 환생자인 `쬐 빠뛸 린포체`의 탄생지이자..
19세기 대 성취자 `샵까르 쪽둑 랑될`의 탄생지입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습니다..
`레꽁사원`은 `차끄라삼바라`가 실제로 현전해 있는 궁이라고 합니다..
이 사진 속에는 `쬐 빠뛸 린포체`의 법상속자인 `괸뽀 쩨뗀 린포체`가 있습니다..
빠뛸 린포체는 생전에 `샵까르 쪽둑 랑될`을 만나지 못한 것을 그리 아쉬워하더니..
결국.. `샵까르`께서 태어난 그 곳에 새로운 환생자로 태어나시는군요....







위 사진에서 가운데 부분만 확대한 것...
사진에서 딜고 켄쩨 린포체로부터 오른편 두번째에 서 계시는 분이 `괸뽀 쩨뗀 린포체`..
(오른편 기둥과 나란히 서 있는 분...) 

 19세기 롱첸닝틱의 대성취자..현세의 붓다..`샵까르 쪽둑 랑될`
그의 전승을 딜고켄체 린포체께서 이으셨습니다..
전생의 딜고 켄체께서는...
잠괸 꽁뛸 로되 타예님의 5대보장..`샵까르님의 전집..롱첸빠님의 7보장..등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하셨죠..


1953년에 종사르(Dzongsar) 사원에서 찍은 사진..
앞줄에 앉아있는.. 싸꺄 공마 닥첸 린포체..
뒷줄 좌측으로부터..
라마 깡 짜오 린포체..고나 뛸꾸 린포체..잠양켄쩨 최끼 로되..딜고 켄쩨 린포체..
이때 그의 나이 마흔 넷이었습니다..

 1957년경..티벳을 떠나 부탄으로 가기 전에 `라싸`에서 찍은 사진..
이때 나이 마흔 여덟쯤이었습니다..

 1958년...티벳을 떠나기 전에 라싸에서 찍은 또 한장의 사진..
이 때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습니다..

라싸에서.. 그의 아내.. 두 딸과 함께
위 사진과 같은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딜고 켄체 린포체만 오려 낸 사진이지요..

그는 모든 귀한 책과 그의 저술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동부티벳을 떠나 라싸로 갑니다..
그곳에 남겨두고 온 모든 것들은 공산당이 거두어갑니다..
라싸의 조캉사원에 있는 조오 불상 앞에서 6개월 동안 10만번의 만달라 공양을  올립니다...
중공군은 라싸에까지 쳐들어오고..
캄에서 피난 온 모든 사람들을 체포하여 되돌려보냅니다..
어떤이는 자식들과 생이별을 시키고..
어떤이는 달아나기 위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물로 뛰어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밧줄에 묶여 트럭에 실립니다..
다른..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까르마빠가 계시는 쭈르푸 사원을 떠나..
그는 열두필의 말을 빌리고... 야크에 짐을 싣고..히말라야의 설원을 넘어갑니다..
그러나 며칠 뒤에는 중공군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해왔으므로..
거의 모든 짐.. 대부분의 책..귀중한 불상.. 을 버리고.. 빈 몸으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눈에 보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쏘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몸을 숨기고..밤새도록 움직여야 했습니다..
히말라야의 밤은 몹시 추웠고...
3일 밤낮으로 눈이 내렸으나..연기를 보일까봐..불을 피울 수도 없었습니다..
한달 반 동안의 여정끝에 부탄 국경에 이르렀으나..
먹을 음식은 없었고.. 부탄 정부의 허락이 없어 12일을 더 기다립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숲을 지나옵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히말라야를 넘어 겨우 부탄으로 들어왔으나...
그의 근본 스승.. 잠양 켄체 최끼 로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열일곱살에 스승 셰첸 걀찹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한 번..근본 스승을 보내는 슬픔을 보게됩니다..
이 사진은 캄뚤 린포체와 함께 씨킴에서 다비식을 하는.. 딜고켄쩨 린포체의 모습입니다..
이 때는 1959년 6월 중순이었고.. 그의 나이 쉬흔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 잠양 켄쩨 최끼 로되의 제자들로서...
화장후에..그의 수뚜빠를 짓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나르는 모습..
 화장후.. 잠양 켄쩨 최끼 로되의 사리를 봉안한 수뚜빠...


 1959년.. 티벳을 떠난 후에.. 깔링뽕에서...
그는 깔림뽕과 다질링에서..
뒤좀 린포체.. 깡규르 린포체와 같은 큰 라마들을 만나..
서로 가르침을 주고 받습니다..

그는 부탄 왕족의 요청으로 `팀푸`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점차 그의 주변에 제자들이 형성되고..
수년이 지난 뒤에는 나라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1962년에.. 그는 네팔에 있는 3대 대탑 중의 하나인 나모붓다를 순례합니다..
그는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정상에는 암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예전의 스승들이었던 셰첸사원의 세 라마들이 나란히 앉아있었습니다..
셰첸 갤짭.. 셰첸 랍잠.. 셰첸 꽁뛸...
그는 세 스승에게 절을 올리고.. 슬픈곡조로...
중국 공산당의 손에서.. 얼마나 고초를 겪으셨냐고 물었습니다..
셰첸 랍잠.. 셰첸 꽁뛸께서는...  중국의 포로 수용소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태어나고 죽는 것은 꿈이나 신기루와 같다..
그리고 근본성품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켄체 린포체는.. 극락정토에서 곧 당신들과 함께 하고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가르침이 급속도로 쇠락하고 있고..
스승이라는 자들은 대부분..엉터리같은 사깃꾼에 불과했기에...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자.. 셰첸 꽁뛸께서 눈을 부라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중생들을 돕는데 힘쓰고.. 가르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 세 사람은  하나로 뭉쳐 한 환생자의 몸으로 너를 찾아갈 것이고...
목적을 완수하도록 도울 것이다..``

1966년... 켄체 린포체의 큰 딸이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세첸 랍잠 린포체입니다..
이렇게..`셰첸 랍잠 린포체`는 켄체 린포체의 손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셰첸 랍잠 린포체에게서 손자 이상의  의미를 찾으려했습니다.. 
다섯살 때부터 데리고 있으면서..세상을 떠나기까지...25년동안 모든 가르침을 줍니다..
성지..나모붓다에서 꾼 꿈에서 본 것처럼... 
그에게 있어...`셰첸 랍잠 린포체`는 
그의 첫번째 근본스승 셰첸 갤짭(1871~1926)의 환생자이자.. 
6대 셰첸 랍잠(1910~1959)의 환생자이며.. 
셰첸 꽁뛸(1901~1960)의 환생자였기 때문입니다..

부탄은 빠드마삼바바에 의해 불교가 전래된 이래.. 외침을 받은 적이 없으며...
그 곳 사람들의 마음에 다르마가 깊이 뿌리내렸기에..
산봉우리마다 암자가 세워져있고.. 룽따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 움직이는 곳마다..
매일.. 이른 새벽부터.. 신도들이 린포체가 계신 곳으로 와서
아침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빵과 보리가루.. 치즈..버터등을 공양으로 올렸습니다.

그가 한번 움직이면.. 온 나라가 그것을 알고있는듯 했다 합니다..
반나절 거리만 움직여도..마을 사람들이나.. 승려들이 길가에 서서 기다렸으며..
향나무 더미를 쌓아 불을 지핌으로써.. 향기로운 연기를 공양으로 올리고자 했습니다..
어떤이는 용이나 금시조..연꽃등이 새겨진 좌탁앞에..손으로 짠 카페트를 깔고..
어떤이는 차 주전자를 날랐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는 한달 혹은 그 이상 머무르면서 가르침을 주었고...
법회가 끝나자마자.. 지체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일년내내 이와같이 움직이면서 법회를 열었고..
1년에 세번이나 네번은 ..
8일에서 14일 동안 밤낮으로 계속되는 둡첸이라는 큰 법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정해진 시간 없이..가르쳤습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물어오면..그 순간이 가르침이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밤낮으로 쉬지않고..한달 혹은 두달 가르침이 계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가르치고나서도...
한밤 중이라도 가르침을 받거나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받아들였습니다..
법회 기간에 모든 사람들이 식사를 하러 간 사이.. 남아있는 몇분마저도..
사다나.. 혹은 관련 논서에 대해 설명하는데 할애했습니다..

항상...그가 가르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사람이 어찌 저렇게 할 수있 을까..하고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어떤 경론의 내용이라도...전혀 힘들이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중간에 멈추거나 망설이지도 않고 읊는 것이...
마치 책을 앞에 펴놓고 읽는 것과 같았다 합니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 말을 시작하면...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틀린부분이나..중복이나.. 어떤 군더더기가 없어서...
법문을 한 그대로가 ..수정할 필요도 없이 책이 되었다고 합니다...



1963년에 아르노 데자르댕이라는 프랑스 사람이..
티벳불교 관련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도 망명 직후의 린포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50대 초반의 딜고켄체 린포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3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차딸 린포체.. 뒤좀 린포체와 함께..

이 무렵에... 
4대종파를 대표하는 라마들이 모두 다람쌀라에 모였습니다...
달라이라마의 장수를 위해 기도하고.. 티벳불교의 보존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닝마.. 싸꺄..까귀는  각자 자신의 종파를 대표해서..
달라이라마에게 만달라공양을 올릴 사람을 선택하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 경우에.. 공양을 올리는 자는  
먼저...불교 우주론과..역사..가르침에 입각하여..우주를 묘사하는
매우 길고...호소력있고 사변적인 언설을 지어 올리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대학승`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문장을 짓기위해서는  몇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딜고 켄체린포체는 하루 전에 그것을 지어올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 학승이..그 사실을 알고는 매우 미안해 하며.. 
관련된 저작을 하나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이라도 좀 공부해두시거나..
다음 날.. 공양을 올릴 차례가 오면.... 그냥 펴놓고 읽으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그를 찾아온 손님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마저 하고...잠을 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차례가 와서...
그는 달라이라마와 많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그 책의 첫페이지를 폈습니다..
그리고 책은 그대로  놓아둔 채... 두시간 가량...문장을 즉석으로 지어올렸습니다..


1964년경 깡그라 계곡  베누리에서.. 캄뚤 린포체.. 네뗀 촉링 린포체와 함께..

딜고 켄쩨 린포체께서는 
티벳 동부..`캄빠가르`에서 지은 `캄뚤 린포체`와의 인연을..
이 즈음에... 깔림뽕에서 지속시키고...
1969년 이후에는...따시종에서  계속 이어갑니다..
그리고 캄뚤 린포체께서 생을 마감하였을 때에도..
캄뚤 린포체의 다비식을 치른것은  켄체 린포체였습니다..
1974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네뗀 촉링 린포체의 다비식 역시..
딜고켄체 린포체..캄뚤 린포체.. 종사르 켄체 린포체께서 오셔서 치렀습니다..




1972년 경에 찍은 사진.. 
쌍게 넨빠 린포체.. 종사르 켄체 린포체.. 족첸 린포체.. 공장 린포체.. 지가르 꽁뛸과 함께..



1972년 따시종에서 `담~ㅇ악죄` 관정을 주는 동안에.. 종사르 켄체 린포체와 함께...
담~ㅇ악죄는 8대수행법통의 관정과 구전에 관한 잠괸 꽁뛸 로되 타예의 보장입니다..

종사르 켄체 린포체는 뒤좀 린포체의 손자입니다..
한편..딜고 켄체 린포체에게 종사르 켄체 린포체는
그의 두번째 근본 스승.. 잠양 켄쩨 최끼 로되의 환생자입니다.. 
그의 스승의 환생자가 발견되어 씨킴으로 오게되었을 때... 
씨킴과 인도 접경지역까지 가서 그를 맞이하였습니다..
몇시간 동안 씨킴의 수도 강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이 눈물은 기쁨과 헌신의 눈물이다...
몇시간동안.. 한 어린아이를 본 게 아니라.. 
마치 생시인듯이.. 전생의 스승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는 이 어린 환생자를 볼 때마다.. 
길바닥이라 할지라도..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1972년 따시종에서 `담~악죄` 관정을 주는 동안에.. 셰첸 랍잠 린포체와 함께...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셰첸 랍잠 린포체는 스승의 환생자로서..
딜고 켄체 린포체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가장 큰 책임을 떠맡으신 분입니다..

1972년.. 따시종에서 `담~악죄` 관정을 주는 동안에..
우로부터.. 셰첸 랍잠.. 딜고켄체.. 종사르 켄체.. 쌍게 녠빠..지가르 꽁뛸..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는 자신의 두 근본 스승을 보내고나서...
새로운 환생자 속에서 두 스승과의 인연을 이어갑니다..
그 인연은 바로  `종사르 켄체 린포체`와 `셰첸 랍잠 린포체`입니다...
그의 인생의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었던 거죠..


1972년 혹은 1973년 초에..
뒷줄  좌로부터..
아보 린포체..붐뚤 린포체.. 딜고 켄체 린포체..캄뚤린포체..도르종 린포체..
최걀 린포체.. 똑덴 최릭..
앞줄 좌로부터.. 쌍게 녠빠 린포체.. 종사르 켄체 린포체.. 셰첸 랍잠 린포체..

1973년경..부탄의 쌈쩨에서... 뒤좀 린포체.. 셰첸 랍잠 린포체.. 족첸 린포체와 함께..




1975년 2월.. 다질링에 있는 공항에서..


1976년 3월에 미국 버몬트의 까르메 최링에서.. 뚱빠 린포체와 함께





1976년 미국 버몬트의 까르메 최링에서


1977년경..보드가야에서..


1977년 까트만두에 있는 보다나트(자룽카소르)에서...
이 자리는 지금 관정을 주기위한 법회입니다..
딜고켄체 린포체께서 많은 어린 환생자 사이에 끼어 보다나트 대탑 아래 앉아있습니다.

자룽카소르는 수많은 티벳불자들이 순례하는 대성지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닝마전승에는 더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자룽카소르의 불사와 티벳에 불교가 들어오게 된 것과는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먼 옛날..과거불의 시기에..자시모라는 여인이 살았고..
이 여인은 그가 낳은 네 아들과 함께..시방의 부처님께 탑을 지어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탑이 지어지고 난 후에..그들은 저마다 원력을 세웁니다..
역할은 다르나.. 그 원력의 중심은 티벳설원에 불법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티벳 설원에 이 네 아들이 인연으로 모입니다..
첫째 아들은 대왕..`띠송데쩬`으로...
둘째 아들은.. 대성취자 `빠드마삼바바`로..
셋째 아들은  대학승.. `산따락시따`로...
넷째 아들은 대신하.. `바미 띠셰르`로...만나..
음침한 귀신으로 득실거리는 설국을 붓다 다르마의 세계로 변모시킵니다..
진정한 마법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1978년에..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는 
뛸꾸 우르겐 린포체의 초청으로
네팔 까트만두에 있는  `까닝셰둡 링`을 방문하여...
촉규르 링빠의 `새로운 보장(촉링 떼ㄹ싸ㄹ)`에 대한 관정과 구전을 전수해줍니다..
그 곳에는 
뚤식 린포체.. 셰첸 랍잠 린포체.. 종사르 켄체 린포체.. 찌께 촉링 린포체..최끼니마 린포체..
오르겐 똡갤 린포체..뻬마 왕갤.. 직메 켄쩨..지가르 꽁뛸 린포체 등의
수많은 뛸꾸들과 수행자들이 모였습니다..

촉규르 링빠의 새로운 보장을 위한 법회 마지막 날에는...
 쌈예 사원을 통해 티벳 땅에 불교가 다르마가 세워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특별한 드라마가 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과거불 시대에 자시모의 네 아들이 `자룽카소르`(보다나트) 앞에서 세운 원력에 의해.. 
다시.. 산따락시따..빠드마삼바바.. 띠송데쩬..바미 띠셰르로 태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원.. 그리고 서원이  만들어내는 역사를 봅니다..
이 드라마를 위해...
사진 좌측의 뚤식 린포체는 대학승 산따락시따로..
중앙에 있는 딜고켄체 린포체는 연화생 빠드마삼바바로..
우측에 있는 최끼니마 린포체는 고대의 왕 띠송데쩬으로 분장하였습니다..
머리에 쓴  관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1979년 말.. 보다나트 뒷편..셰첸 사원이 세워질 자리에 있는 텐트에서..


1979년 말.. 보다나트 뒷편..셰첸 사원이 세워질 자리에 있는 텐트에서..

그는 자룽카소르 대탑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이 자리에 사원을 짓기로 하였으니..
`닝마의 사원이 이 곳에 지어지는 것은..
그 지역전체에 평화와 풍요를 가져다주리라`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티벳동부에 있는 셰첸 사원은 닝마 6대사원 중 하나였으며..
국경을 넘어서까지 160개 정도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미빰 린포체..셰첸 걀짭, 셰첸 꽁뛸과 같은 대학승이 주석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새로운 셰첸사원의 불사는 1980년에 시작되어..12년에 결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 열반하시던 해인 것 같습니다..



1980년 초에 부탄에 있는 빠로 딱짱을 찾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직메링빠의 환시를 보게됩니다..
그때 그는 환시로 나타난 직메링빠의 가피를 받고..이와같이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대는 나의 가르침... 롱첸 닝틱의 계승자다...``
그 때 그의 나이 일흔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빠드마삼바바께서... 암사자를 타고 내려와서..
수많은 세속의 영들을 제압하고 보장(떼르마)을 숨겼으며..
까게(데셱 뒤빠)의 수행을 한 곳으로서..
그로 인해..`도르제 돌뢰`라는 그의 마지막 변화신의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이 이름은..보장(떼르마)라는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고서 얻은 이름입니다..
그 뒤 밀라레빠께서 이곳에서 수행하셨고..
그 다음에는 빠담빠 쌍게.. 마칙랍된.. 탕똥갤뽀께서 수행하신 곳입니다..

딜고 켄쩨 린포체는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두 명의 떼르뙨 중 하나였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뒤좀 린포체입니다...
그의 떼르마는 대부분 심보장입니다...
심보장은 외부 공간이 아닌 제자의 심상속에 숨겨진 것이며...
떼르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발견한 떼르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주시리의 핵심가르침인 잠빨 닝띡...
녹색 따라..
구루 닥뽀..
라쮠 라둡..
뻬마 쩨이 닝띡..
랑중 뻬메 닝띡..

`랑중 뻬메 닝띡`을 위한 법회가.. 
딜고 켄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2010년인 작년에 있었습니다..



1980년.. 프랑스의 아말라 하우스에서...


1980년대 중반에..프랑스에서.. 셰첸 랍잠.. 빼마 왕갤 린포체와 함께...

1987년.. 록키산맥의 달마센터에서..
셰첸 랍잠 린포체.. 종사르 켄체 린포체.. 뚤식 린포체와 함께.. 


1987년.. 뚱빠 린포체가 세상을 떠난 직후.. 
미국 버몬드.. 까르메 최링 사원.. 그를 위한 다비식에서..


1987년.. 뚱빠 린포체의 다비식이 진행되는 중에..


1987년.. 뚱빠 린포체의 다비식이 진행되는 중에..


네팔 까트만두에서  뗀가 린포체와 함께..






1991년.. 켄체의 빛을 밝힌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 부탄에서 열반하셨습니다..
그리고 1년동안 화장하지 않은 채 보존되다가.. 1992년에야 다비식을 하였습니다..
다비식은...빠로 딱짱 건너편에 있는 빠로계곡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전세계에서 그의 제자들과 신도들이 그의 다비식을 보러 왔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이 곳은...빠드마삼바바의 성지.. 빠로 딱짱..
탕똥갤뽀께서 빠드마삼바바의 보장을 발견한 곳이고..
딜고켄체 린포체께서 수행하셨던 곳이자..
직메링빠의 환시를 보았던 곳으로...
다비식이 이루어지던 바로 그날에 찍은 사진입니다..



딜고켄체 린포체의 몸을 다비장으로 운구하는 장면..

마치 국상이라도 되는듯이.. 수많은 부탄사람들이 모려오고 있습니다..

다비식을 위해 마련된 장소...

이 곳은 그의 다비장이며...
그의 마지막을 보려고..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다비`를 시작하려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다비`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꼬라를 돌고있는 그의 제자들..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 열반하신 후에..
뚤식 린포체는 스승의 환생을 암시하는 꿈을 꾸고 환시를 봅니다..
그 환시 속에서 본 네 귀절의 시는..
아이가 태어나는 연도..부모의 이름.. 태어나는 장소를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 속 네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죠...

``계유년(1993년) 다섯번째 달 10일(6월 30일)..빠드마삼바바의 생일에...
절친한 법우 중 하나인..`뛸꾸 우르겐의 아들`과..
`데첸 빨된`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되리니..
그가 바로.. 틀림없는 `따시 뺄조르`(딜고 켄체의 법명)의 환생자이다...``


1996년 12월 28일에..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네팔 동부에 있는..빠드마삼바바의 성지.. 마라띠까 동굴에 모였습니다..
딜고 켄체 린포체께서..다시 돌아왔음을 세상에 알리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세살된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있었고..뚤식 린포체는 그에게 흰색 카닥을 올렸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인사법에 익숙한듯이..이 아이는 뚤식 린포체의 목에 그 카닥을 걸어주었습니다..


1997년.. 까트만두 셰첸사원에서.. 그의 착좌식이 있었습니다..
딜고 켄체 린포체의 환생자.. 오겐 뗀진 직메 룬둡 

2010년 처음 이루어진 그의 대중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