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31, 2014

경(Sutra)..속(Tantra)은 무엇인가..?

경(經-Sutra)..속(續-Tantra)의 의미를 다시 물으셨네요..


(Sutra)은.. 본디 `다른사람이 내게 들려주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서...
불교에서 말하는 경이란...부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속(Tantra)의 기본적인 의미는 연속(連續)이라는 의미입니다..
삼사라와 열반의 연속성을 의미합니다..
두 세계는 동일한 곳에 뿌리를 두고있고...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무분별입니다...
그래서 속(Tantra)입니다...
그에 반해... 경(Sutra)은 삼사라와 열반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두 세계가 서로 다릅니다.. 
중생은...삼사라에서 다르마의 배를 타고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
오늘은 어떻게 해서라도 쉽게 접근하려 애써볼 겁니다..

경(Sutra)과..속(Tantra)은 부처님이 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나타나는 어떤 차이가... 경(Sutra)이나..속(Tantra)을 가릅니다....
속(Tantra)이 경(Sutra)의 방법보다 수승하다고 그러죠..
그런데 뭐가 다르고..뭐가 수승할까요...?
..................
견해가 다르다고 합니다..
경(Sutra)은 항상 어떤 원인에서 출발을 합니다...
거쳐가는 여정이 있고... 결국 어떤 목적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경(Sutra)의 견해입니다...
속(Tantra)은 시작 속에 도달하게 될 지점이 있습니다..
둘은 동시에 나타납니다... 동시에 겹칩니다..
그러므로 거치는 과정 또한 없습니다...
이것이 속(Tantra)의 메카니즘입니다..
속(Tantra)은.. 결과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바로 관통해버립니다..
경(Sutra)은 목적에 도달하는데 3무량겁이 걸린다 하지만...
속(Tantra)은 한생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주공간은 만곡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우주공간에 쏘아올린 우주선은...(명왕성 지나 그어디쯤 가고있다고 하죠..)
만곡된 공간을 따라..어마어마한 세월동안 지구에서 우주저편으로 항해를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공간만곡의 비밀을 풀어서...관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여기에서..우주의 저쪽 끝까지 한순간에 가로질러 가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이론적 토대는... 거치는 경로와 결론을 바꾸어버립니다...
.........................
이처럼 견해가 다르다면...
명상에 대한 접근자체가 달라지고..방법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러한 방법  혹은 기술을...우리는 방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냐...
속(Tantra)은 방편이 수승하다는데서... 그 존재 이유를 갖습니다...
공성의 지견에있어서는 둘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방편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것입니다..
방편의 차이가...속(Tantra)이 나타나게 만든것이죠...

물론 경(Sutra)에도 방편이 있지만...매우 단조롭습니다..
보시,지계, 인욕, 정진, 선정,지혜라고 하는... 여섯가지 바라밀을 방편으로 씁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경(Sutra)의 방편은 보시,지계, 인욕입니다..
요약을하면.. 삶을 조화롭게 살거나... 삶밖으로 조용히 비껴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속(Tantra)에서는 현란한 방편을 구사합니다...
모든 것이 방편이 됩니다...
성(性)적인 것을 포함한..일상의 모든 행위가 방편이고...
명상이 방편이고..
육신과 의식의 분리가 방편이고...
꿈이 방편이고..
죽음 뒤의 바르도가 방편입니다..
방편이 이처럼 다양해지고 묘해지는것은... 견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하나의 원인에서 출발하여... 과정을거쳐 결과에 도달하는 
경(Sutra)의 메카니즘을 다 설하신 뒤에...
최후의 가르침으로... 속(Tantra)을 잠시 강설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깔라차끄라 딴뜨라.. 문수진실명경 같은 것입니다..
열반의 시점이 다가오자...
이 몸으로는 속(Tantra)을 설할수 없다 하시면서...
속(Tantra)을 설하기에 걸맞는 수승한 몸이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석가모니 부처님은 한가지 예언의 말씀을하셨습니다..
경(Sutra)의 메카니즘 뒤에... 
속(Tantra)이라는 수승한 방편이 나타나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었죠...

``내가 떠난뒤로 어떤 사람이 나타날것이니..
그가 가르치는 방식은 내가 가르치는거하고 다를것이다..!
내가 떠난 뒤 12년 뒤에 나타날 것이고...
연꽃 한가운데에서 화생을 해서... 연화생이라 부를 것이다..``


이렇게 해서...속(Tantra)은 경(Sutra)의 연장선으로 나타납니다..
부처님 열반뒤에... 바로이어서 빠드마삼바바께서 화생하시고...
족첸의 초조이신 가랍도르제께서... 거의 같은 시점 같은 곳에서 나시고...
시리빠다라고 하는 말라야산 정상에서...
금강수와 가랍도르제는 마하,아누, 아띠라고 하는 형태로...
속(Tantra)이라는 수승한 메카니즘을 세상에 내놓았고...
시다림(尸茶林)에서.. 속(Tantra)을 세상에 유포시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붓다 하나가 세상에 나타날때마다...연화생도 나타난다고...
그것은... 경(Sutra) 뒤에는.. 반드시 속(Tantra)이 나타나야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Saturday, March 29, 2014

마칙랍된-- 그가 태어나기 전에

마칙랍된은 지혜의 다끼니, 바즈라다끼마(Vajradakima)이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낳으신 분, 윰 첸모의 마음의 화신이다.. 
중생들을 도우려는 서원의 힘으로.. 
그는 인도 까삘라(Kapila)의 시리수라 아리야(Srisura Arya) 왕의 아들로 태어났고.. 
쁘라니다나 씻디(Pranidhana Siddhi)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그는 쓰고 읽는 것을 익히고..학문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였기에...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는 단 한 번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다섯 살 때에.. 이미 모든 분야에서 폭넓은 지식을 얻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를 부처님이 현신하신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열살이 되었을 때에.. 논사 삐띠 바드라(Piti Bhadra)로부터 비구계를 받았고... 
아르타씻디 바드라(Arthasiddhi Bhadra)라는 법명을 얻었다.. 
그는 3년 동안 스승과 함께 머무르면서.. 
문법과 논리.. 바라밀승, 승려의 계율에 관한 율장과 논서 등을 공부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학식은 스승을 능가하게 되었다.. 
스승은 그의 근기를 알아보고.. 네가지 딴뜨라를 가르쳤으며.. 
이 분야에서 뛰어난 학승이 되었다..

스승과 함께 있으면서.. 삼장(三藏) 가운데 몇 부분을 수정하였고.. 
딴뜨라에서도.. 몇가지 주해를 달았다.. 
그리고 삐띠 바드라(Piti Bhadra) 왕에게 마음속에서 일어난 몇 가지 생각을 전해주었다.. 
그의 스승은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아르타씻디 바드라(Arthasiddhi Bhadra)야~! 
나는 더 이상 네 스승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겠구나.. 
이제 너는 가서..북부의 땀라뒤빠(Tamradvipa)에 계시는 라뜨나(Ratna) 스승을 찾거라..
그는 짜끄라삼바라(Cakrasamvara)의 대 성취자이시고.. 
본존의 만달라 궁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 
그는 삼장(三藏) 전체에 능통한 분이시고.. 수승한 덕을 모두 지니고 계신 분이다.. 
그와 함께라면.. 너는 모든 의문을 잘라낼 것이고.. 
비밀 만뜨라승의 무상요가부 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면.. 수많은 중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되리라..

다음날 `아르타씻디`는 떠났고...
라뜨나 스승은 그를 만나자마자..그가 다르마의 가치있는 그릇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공중에 짜끄라삼바라(Cakrasamvara)의 만달라 궁을 지어..
예순 네 가지 본존으로 나타내보였고.. 상세하게 네 가지 관정을 수여하였다...

마침내 `아르타씻디`는 최상의 성취를 얻었고.. 
아무 걸림없이.. 정토를 왕래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그는 스승 가까이에 머물렀고.. 
수뜨라(經) 딴드라(續)의 모든 가르침에 대한 의혹을 잘라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상요가 딴뜨라의 생기차제와 원만차제를 완전히 성취하였다.. 
이때에.. 스승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너는 보드가야(Bodhgaya), 금강좌(Vajrasana)로 가서..
거기있는 외도들을 물리치고.. 가르침에 입문시키거라.. 
그들과 논쟁하여 이길 수 있는 자는 너 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열여섯 살의 나이에 보드가야로 떠났고.. 
수차례에 걸쳐.. 외도들 10만명과 논쟁하였고.. 모두 불교에 입문시켰다..

4년 동안 보드가야에 머무르고 있는데.. 
어느 날.. 위엄이 있는 천녀, 따라가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는 곧 티벳으로 떠나.. 거기 있는 중생들을 유익하게 해야 할 것이오.. 
그러니 명상수행에 깊이를 더하시오..!”

깊은 생각한 끝에.. 그는 이렇게 결정하였다.. 
“나는 이제 토굴을 버리고...이 성지 저 성지를 떠돌아야겠다..”

그는 북쪽으로 가다가 어떤 화장터에 머무르게 되었다.. 
잠을 청하려고 눕는데.. 그 화장터의 따끼니가 나타났다.. 
몸에는 뼈 장신구를 걸치고.. 
띠국(도끼)과 카땅가(삼지창이 달린 홀)를 쳐들고서 그에게 말하였다.
“이 봐 너~~! 잠잘 데가 이 화장터 말고는 없던가?” 
이 말과 함께 다끼니는 온갖 이상한 환영들을 불러내었으나.. 
그는 선정의 힘으로 다끼니의 환영들을 제압하였다.. 
그러자 생명의 정수를 그에게 바치면서.. 다르마를 수호하기로 서약하였다..

새벽녘에 그는 열다섯 본존의 모습으로 나타난.. 
무아녀(無我女)-나이라뜨먀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라이라뜨먀가 말하였다.. 
“요가행자여~! 뽀따리(Potari)로 가서.. 그대의 수행을 서두르시오.. 
이제 곧 그대는 티벳으로 떠나야 하오..” 
그리고는 무지개처럼 흐려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아직 어린데.. 수행을 끝마치라고 한다.. 
그렇다면..무슨 수행을 해야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티벳인들은 성정이 거칠어서.. 다스리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면 수행을 끝마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구나..!”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새벽의 미명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대 환영의 여신..나이라뜨먀가 다섯 본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에게 말하였다.. 
“뽀따리(Potari)에 있는 바드라(Bhadra) 동굴로 가라.. 
거기서 흑녀(黑女)와 그 권속.. 깔리까(Kalika)의 수행을 하시오.. 
요가 행자여~! 그대는 곧.. 티벳의 방황하는 존재들을 다스려야 하니..서둘러 정진하시오..” 
이 말과 함께 빛으로 응결되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동이 튼 뒤.. 화장터의 다끼니가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시종이 되어드리지요..”
그렇게 다끼니와 친해지고 난 뒤.. 
그는 룽곰(輕功術)의 힘으로..어려움 없이 바드라(Bhadra) 동굴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깔리까(Kalika) 5본존을 수행하였다.. 
2주 만에 일반적인 성취가 나타났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이담의 다섯 본존을 친견하였다.. 
본존은 그에게 갸냐구햐 만달라 궁에 들어가는 관정을 빠짐없이 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많은 예언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대는 가서 티벳에 있는 자들을 다스리시오..” 
그리고는 한 점 빛이 되어 가슴 속으로 흡수되었다..

한 달 뒤에.. 따라(Tara)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티벳에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예언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따라 역시 한 점 빛이 되어 그의 가슴으로 흡수되었다..

달이 차기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에.. 무량수불(Amitayus)께서 나타나.. 
그에게 추가적인 예언과 함께 많은 의례를 베풀고.. 관정을 내려 주었다..

마찬가지로.. 여덟 번째 날에.. 관음께서 나타나 더 많은 예언과 함께.. 관정을 내려 주었다..

열 번째 날에.. 빠드마바즈라(Padmavajra)께서 다끼니(Dakini) 성중과 함께 나타나..
다르마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빠드마바즈라는 그에게 하야그리바와 바즈라바라히의 비밀만달라를 그에게 주었고.. 
해당 관정을 내려주고.. 티벳에서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예언을 해주었다..

열 번째 날에서 열 다섯 번째 날까지는.. 다끼니들이 번갈아가면서.. 곧 떠날 것을 권하였다..

마침내.. 만월이 되던 날.. 동틀 무렵.. 
크게 분노하는 암청색의 다끼니가 해골장식을 걸치고서.. 
카땅가(Khatvanga)와 띠국(Trigug)을 들고 나타나 그에게 말하였다.. 
“요가행자여~! 티벳으로 갈 준비를 하시오.. 
그대를 죽여야만 하니..그대 의식을 내 심장 속에 흡수시키시오. 
다끼니는 금강의 도끼(Trigug)를 들어올리더니..  그를 내리쳐 죽였다.. 
시킨대로.. 그는 자신의 의식을 다끼니의 심장으로 흡수시켰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무살이었다..

그의 시종이 된 화장터의 다끼니와 함께.. 
티벳의 랍치(Labchi) 지방에 있는 에 강와에 도착해서.. 
미래 어머니가 될 분의 자궁 속으로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이 말의 해, 다섯 번째 달, 보름날에 이루어졌다.. 



Monday, March 24, 2014

힌두철학과 불교철학의 역사적인 조우..

부처님의 법이 뿌리를 내릴 때에…
불교와는 다른 논리를 주장하는 여섯 사람이 있었다…
6사외도란..소위 이런 여섯명의 스승이 말하는 어떤 다른 가르침을 말한다..
그때 당시에는... 이 여섯가지 논리가 불교의 논지를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논리적인 설득력으로...다르마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었다..
지금은 입장이 다르니...그와같은 장애가 몇가지인지 새로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때로 되돌아가 여섯가지 주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오늘의 우리에게 비추어 고민해보자…
그럴싸하지않으면.. 경계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 논리가 우리들에게도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첫번째 외도는 `뿌라나`라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이다…
원인없이 우연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것이니…죽으면 그만이다..
나아가야 할 지향점도 없고...착해야 할 이유도 악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선과 악에 집착하지마라...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면 된다…
추구함으로서 도착할 곳은 없다..정토도 없다..
선악이란..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의 관념속에만 있는 것 뿐이다…


두번째 외도는 `마깔리`라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그는 운명론자였다...
모든 것은 도달하게 될 결론이 있고...그 끝지점을 향해 운명적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프로그램과 같아서...그냥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개입해서 노력을 한다거나.. 의지를 발휘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해서..깨끗해진다거나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보탤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고 있으면… 저절로 거기에 도달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렇게 보채면서 사는가... 내버려둬라…


세번째 외도는 `싼자야`라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그는 불가지론자였다…
사물의 본질을 있는그대로 인식하거나 서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옳다 그르다는 분별을 떠나라…
………………...
그러나 그들은 선택을 허락받지 못했으나..
사유하는 인간은 어떤 지점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는 맹점이 있다…
그래서..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지점에서 그들이 머무를 공간을 찾았다…
애매모호한 회색지대에 자신을 숨겼던 것이다…


네번째 외도는 `아지따`라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그는 유물론적 쾌락주의자였다…
도덕같은 것은 필요없고… 내 마음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거스르지말아라...하고자 하는 그대로 살아라…
도덕적으로 꾸밈으로서 미래를 약속하고자 하거나..
사회질서에 따라감으로서 인간이 성숙이 된다는 논리는 어리석다...


다섯번째 외도는 `빠꾸다`라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생명의 본질은 그대로 불멸하다…
사라지게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선을 행한다하여 아름답게 할수도 없고...악을 행함로서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배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궁극적인 실재가 있어..그대로가 영원히 불멸하다는 얘기다..


여섯번째 외도는 `니간타`라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그는 이원론자였다…
지금의 자이나교가 이것을 대변하고있으므로… 자이나교를 보면 이것을 안다…
……………………
불교가 경계하고 부정했던 것은 6사외도이지.. 6파철학은 아니었다..
하지만...6파철학의 논사들이 불교의 논사들에게 덤벼왔으므로 승부를 본 일이 몇번있다…
대부분..6파철학의 논사들은… 떡실신되가지고.. 불교논사로 전향하곤 하였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쓴 아시바고샤(馬鳴) 역시 그러하였다...
아리야데바에게 한방 맞고.. 몹시 신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말인가..?
………………...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불교는 힌두의 토양에서 나왔으니…
그 품안에 있는 자식과 같고.. 항상 그 어머니에게 빚진다는 논리인가..?
그렇다면 답은 쉽다...쉽게 둘을 중재할 수 있다...


아니면…
그와 상관없이 다르마에 대한 견해와 명상이 힌두의 것이 더 수승하다는 것인가?
나는 힌두철학의 어떤 맹점을 보았으므로…나는 내자리에 동요없이 머무른다…
맹점이라하더라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어서…힌두교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나는 힌두가 불교를 폄하한다하더라도 열받지 않는다…
내가 동요해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토양을 제공한다는 말에는 오류가 있다…
토양은 따로있다…
아주아주아주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힌두교이든.. 불교이든 ..그 토양의 자식이다…
형과 동생이...서로 싸운다…
형은...자신의 처지도 모르면서...동생보고 내가 너의 토양이다 그런다…
어이쿠~~
동생은 그런다…
너는 어미로부터 먼저 나왔으나...미성숙한 문열이다…
대개 장남이 그러잖은가…키도 작고 팔뚝도 가늘고!!...
내가 옛날의 동생이 아녀~~팔뚝좀 내밀어봐 형~~``
………………………
미래에 다른 다르마가 나타나면 그럴 것이다…
너는 나의 토양에서 나왔으므로 불교의 아류이다…
새로운 다르마는 말할 것이다…
``나는 네가 태어난 어미로부터 새로 태어난 자식이다..
너의 목숨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시공은… 다르마가 나타나는 공간이지만…
다르마는 필연적으로 시간의 녹이슬고 쇠퇴하기 마련이다…
시원의 바탕에서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다시 나타난다 …
부처도 주기적으로 다시 오고.. 다르마도 새로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르마는 쇠퇴하고… 본질을 잃어버린다…
힌두의 베다라는 토대와 불교는 이렇게 운명의 교차지점에서 만났다…


시야를 조금더 좁혀본다…
불교는 인도에서 티벳으로 건너갔으니..
티벳불교는 인도불교의 아류인가..?
증명해보라….


까귀전승은.. 두가지 전승의 토대를 가지고 있는듯이 보인다…
하나는 인도의 마하싯다의 토양에 뿌리박고 있는 어떤 것이고..
하나는  문화와 토양과는 아무상관이 없이...지금강의 배에서 태어난다…
이럴때는 지금강도 자식을 낳는다...
닝마전승의 마하요가 아누요가 아띠요가(족첸)는…금강살타..금강수로부터 새로 태어난다…
그러나 대승의 철학이라는 인도불교의 산물도 품안에 껴안고 있다…
다른 전승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둘은...같은 부모로부터.. 새로 태어난 다른 형제와 같은 것이다…
부모는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저 하늘에 있다...
지상에 있는 것끼리 토양을 운운하면 되겠는가…!!
…………………...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몇가지를 열거해본다…
일치하지 않는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불교의 세가지 가르침을 모두 보지 않는데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힌두 6파철학은 베다에 의지한다…그것을 버리면 토대가 사라진다…
불교는 베다에 일체 머무르지 않는다..


*불교는 개체적 자아(영혼).. 최초의 원인..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는다..
힌두교는 그 하나의 원인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심상속은 이것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지만…
인과로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의 산물로 취급한다…
아트만이라는 개체적 자아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네가지 극단 중 하나일 뿐이다


*힌두교는 부처를 비시누의 화신으로 본다…
불교는 다르마의 뿌리를 석가모니부처님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비시누 이전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부처님 중 한 부처님일 뿐이다…


*힌두교는 4성계급에 종속을 받는다…
불교는 거기에 종속되지 않는다…
브라만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다르마를 수행할수 있는 수승한 인간의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까르마의 내적인 부분이지… 외적인 혈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힌두교의 불교의 본존들은 겹친다.. 그러나 그 의미 적용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