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을 단 한마디로.. 신비주의라고 표현한다..
직메링빠의 삶은 깊히 감추어져 있어 좀 처럼 알수가 없다..
그의 정체성은 둘이다..
띠송데짼.. 비말라미뜨라..
띠송데짼은 구루린포체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그러나.. 티벳의 살림을 맡아서 하느라.. 그다지 수행을 못했었던 것 같다..
밥도 지어야 하고.. 빵도 맹글어야 하고.. 죽도 쑤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죽기 일보직전에..용포를 아들에게 물리고 수행에 돌입하였다..
그는 수행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였고..
다시 태어나서는 떼ㄹ뙨(寶藏 發見者)의 신분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그는 떼ㄹ뙨의 세계에서도 제왕이 되었다… 그것도 다섯번이나…
세상은 말한다…
떼ㄹ마(寶藏)의 세계에는 비교할 수 없는 다섯명의 떼ㄹ마의 왕이 존재한다고..
그는 한번은 릭진 직메링빠로 태어났다..
18세기 중반이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과거생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였다..
그는 제왕 띠송데쩬으로 산 적이 있으며..
떼ㄹ뙨의 제왕으로도 몇번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였다..
그는 매우 어려서부터 스스로 절집에 들어갔다..
그 때 나이 겨우 여섯살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제가자의 오계를 수지하기 시작했고..
켄쩨 외쎄ㄹ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그는 자신을 숨기고 가난한 처사로 살면서..아궁이에 불도 지피고 마당도 쓸었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으며..
일하는 사이사이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을 뿐이었다..
열 세살에 그는 근본스승..릭진 툭촉 도ㄹ제를 만났다…
그의 가르침은 깨달음의 터전이 되었고.. 확고한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스물여덟에 불교철학에 대한 사유의 길을 버리고..핵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사변의 길을 버렸다.. 그리고 명상에 돌입하였다..
누구나 처음부터.. 명상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견해없는 명상은..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명상이 깊어지고..헌신의 힘이 강렬해지자..
만주시리미뜨라..구루린포체가 나타나 그의 심상속을 장악하였으며..
불멸의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터져나오고.. 미혹의 장애는 무너졌다..
심상속에 봉인되어있던 것이 풀리면서..
그는 자룽카소르라고 하는 상징적 존재 앞에 서게 되었고..
예전에 띠송데쩬이었을 때 받았던 롱첸닝틱의 관정과 구전과 가르침이..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보장서(寶藏書)..라마 공뒤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티벳 남부에..외쎄ㄹ라는 환생자가..
닝틱이라는 심요법문(心要法門)을 가르쳐서 사람들을 속박에서 풀것이니..
그는..그와 인연이 있는 누구라도..
비드야다라의 정토로 안내하리라..``
그는 다시 침푸로 갔다..
거기서 쌍첸 메톡이라는 동굴에 들어가 명상을 채직질하였다..
롱첸랍잠빠께서 세번 그 앞에 현신하였고..마음으로 교감하였다..
그리고.. 롱첸닝틱을 하나하나 기술하였다...
은거하고 있는 동안..열다섯명의 제자가 스스로 나타나 법을 물었고..
처음으로.. 롱첸닝틱의 관정을 내리고 가르침을 주었다…
그는 가르침의 존재에 대해 비밀을 맹서하게 하고..7년동안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무문관을 마치고..티벳 남부로가서 `쩨링 종`이라는 조그마한 암자를 지었다…
많은 제자들이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향기로운 꽃에 벌들이 모여드는 것과 같았다…
그는 남은 생을 여기서 보냈으며...끊임없이 찾아오는 제자들을 맞이하였다..
그 뒤로 쩨링종은 놀라운 스토리로 가득하였지만..그 사실은 깊히 은폐되었다...
무문관을 나온지 7년이 되었을 때..
한 수행자가 나타나 롱첸닝틱의 법을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직메링빠가 있는 곳으로 스스로 찾아와 엎드려 간청하였다..
마음에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심오한 법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롱첸닝틱을 대중들에게 공개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시그널과 같았다..
그 때부터 롱첸닝틱은 급속도로 티벳전역으로 퍼져나갔고..히말라야를 넘었다..
그는 가르침을 시작하면서..
롱첸닝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논서를 아홉권 저술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왼뗀죄`와 `예세라마`이다..
롱첸닝틱의 세가지 근본수행이라 할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첫번째는 `비드야다라 성중`이라는 뜻의 `릭진뒤빠`이고…
그 다음은 `지복의 여왕`이라는 뜻의 `윰카 데첸 갤모`이고 ..
그 다음은 `다끼니의 박장대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최 수행법이다…
다끼니의 박장대소는 직메링빠의 심보장이며..그 본질은 예세쪼갤의 핵심이다..
최의 가르침이 마칙랍된에서 비롯된것으로 알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가르침의 핵심은 예세쪼갤에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르침은 본성을 관통하며..의도하지 않아도 거기에 마주친다..
영향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산다…
그는 권력층의 마음을 샀다..
긍정적인 부분은.. 소수자로서의 닝마전승의 지위를 올렸고..
다른 전승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그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는 직메 틴레 외쎄ㄹ와 직메 갤외 뉴구였다…
사꺄의 띠첸 ~ㅇ아왕 뺄덴 촉용..
디궁 까귀의 두명의 환생자..
도ㄹ제 닥 사원의 릭진 첸뽀..
티벳 동부 데ㄹ게의 왕족들이 그가 그린 중요한 밑그림이었던 듯하다...
특히 직메 갤외 뉴구의 영향력은 티벳동부 데ㄹ게에서 나타났다…
그로부터 빠뛸린포체..잠양켄쩨왕뽀와 같은 인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샵까르도 저멀리 동쪽에서 나왔다..
그의 깨침의 빛은 남으로는 인도 전역을 껴안았고...
중국을 넘어.. 저 멀리 몽고까지 퍼져나갔으며..
그와 비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르마는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빠드마삼바바와 비말라미뜨라가 티벳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티벳의 문화적 중심은...서부 샹슝에서 중부 얄룽으로 넘어가고..
직메링빠의 영향으로.. 다르마 권력의 중심은 다시 동부 데ㄹ게로 이동을 한다…
이렇게 다르마가 이동함에 따라.. 문화적 중심도 이동하는 걸 볼수 있다…
그는 나이 칠십에.. 쩨링 종에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나는 법계를 떠난 적이 없으니..나는 오적도 간적도 없다..``
``이처럼.. 나고 죽는 것은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일체가 본래 깨달아있고.. 해탈되어 있다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