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오래된 사진 한장을 보고 있다...
1940년대 초에 롭쌍 라룽빠가 슉쎕사원을 방문했을 때 찍은 로첸 최니 쌍모의 사진이다...
티벳인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나라로 흩어지기 전에는..
티벳에는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도.. 사진을 찍을 환경도 거의 없었다고 보기 때문에..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이 사진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을 느끼게 한다..
같은 40년대라 해도.. 쎄라 칸도님의 사진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분이 세상에서 단 하나 있는 쎄라칸도님의 사진을 갖고 있다 한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욕심은 안난다...
하지만.. 귀할수록 공유하는 것이 좋지않은가 생각한다...
오늘 같은 경우.. 나의 능력이 심히 모자라...
쎄라칸도님의 그림을 한장 올릴 뿐이다...
다만 그림 속의 저 모습이 생전의 그 모습과 비슷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롭쌍 라룽빠는 로첸 최니 쌍모를 처음 보았을 때 소감을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2주동안 그를 방문하였을 때...하루에 몇시간씩 그를 만날수가 있었는데..
그는 비범한 여자로서..체구는 작았고..자비심과 감수성으로 빛나는 고요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흰 머리카락이.. 그분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
그분이 거기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엄청난 힘을 느꼈다..
그분의 가르침과 가피는 그 이후로 내내.. 내게 내적인 강인함과 영감을 던져주고 있다..
그분은 내게... 티벳에 있는 위대한 여성스승의 전형이었다...``
로첸 최니쌍모는..
닝마의 역사에서 뿐 아니라..티벳불교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 성취자이다..
적어도 가까운 수세기 안에는 분명히 그렇다...
그에게 견주려면... 마칙랍된이나 예세쪼갤 당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16대 까ㄹ마빠..뚤식린포체..레띵린포체..세첸랍잠린포체 같은 분도..
그 앞에서 예를 갖추고..법을 구해야 했다..
그는 구루린포체의 성지 초빼마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어머니에게 고통을 주지 않았으며...
대지는 잔잔히 흔들렸고...
하늘은 다채로운 소리를 내고...꽃비를 내렸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돌았다...
포대기에 업혀서 다니기 시작해서...
걸을만할 때부터는..염소를 타기도 하고 당나귀를 타기도 했지만..주로 발로 걸었다 한다..
그때 당시의 풍습으로 보아..신발도 없었다...
피가나고 염증이라도 생기면..나무껍대기 같은 것으로 동여매는 정도였다고 한다..
죽음의 고배도 몇번마셨다고 한다... 어찌 위험이 없었을까..?
본디 여행이란 안전을 버리는 것이고.. 상황은 고정된 것이 없이 항상 변하고.. 위험하다...
그리고.. 낯선 벌판에서 겨울에 텐트나 초막..바위틈 아래에서 잠을 청한다는 것은..
한순간 순간이 처절한 고통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또 먹을 것은 얼마나 구하기 힘들었을까..?
그는 열세살에..운명의 스승 빼마 갸쪼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빼마 갸쪼는 샵까르의 뛰어난 제자이다... 샵까르를 모른다면 할 수 없다...
롱첸닝틱의 전승자이고...밀라레빠같은 대성취자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직메링빠에게는 뛰어난 두 제자가 있었다...
하나는 직메 갤외 뉴규이고...하나는 직메 띤레 외쎄ㄹ이다..
직메 갤외뉴규에게는 가장 뛰어난 빠뛸린포체와 잠양켄쩨왕뽀가 있었고..
직메 띤레 외쎄ㄹ에게는 가장 뛰어난 샵까르가 있었다...
샵까르를 빼마 갸쪼가 계승하고... 빼마 갸쪼를 로첸 최니 쌍모가 계승하였다고 보면 된다...
빠뛸린포체와 잠양켄쩨왕뽀의 제자들로부터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샵까르의 환생자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로부터 릭진 최니 쌍모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는 여성이었으면서도.. 손에 꼽는 대스승의 자리에 올랐다...
남성보다는 열배나 힘든 자리가 그 자리가 아닌가 싶다..(사회 통념적으로...)
롱첸닝틱의 전승계보를 논하면...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이 로첸 최니 쌍모이다..
딜고켄쩨린포체는 샵까르의 저작을 출판하는 부분에 마음을 많이 쓰셨다..
그러나..세상에는 아직 그의 저작이 세권밖에 나오지 않았다...
딜고켄쩨린포체께서 샵까르님에게 마음을 기울인것은..
그가..잠양켄쩨왕뽀님의 뒤를 이었을 뿐 아니라..샵까르님의 뒤를 이은 것이라고 볼수 있다..
로첸 최니 쌍모가 스승 빼마 갸쪼를 처음 만나곳은 끼롱이라는 곳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눕리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구루린포체의 성지 헤리와 끼모~ㄹ룽이 있다..
이곳은 밀라레빠의 첫 수행처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그들은 무스땅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까일라시로 간다...
마나싸로바 호수를 순례하고.. 주뚤푹으로 가서 은거를 한다..
먹을 것이 따로 없어 쐐기풀을 뜯어먹는다...
주뚤푹은 밀라레빠의 명상동굴이다...
지금 여행다니는 것처럼 마구 다니는 것 같지만..그렇지 않다..
한 곳에서 보통 1년이나 몇년씩 머물면서 수행하는 속도로 보아주어야 한다...
그들은 까일라시를 떠나 까트만두로 들어온다...
까트만두에 들어와서는..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이 하강 현신한 세 탑을 찾아간다..
그들은 청소부가 되어.. 세 탑을 새하얗게 닦아낸다...
세 탑은.. 자룽카소르.. 스와얌부마트.. 나모붓다이다..
거기에서 다시 성산 랍치를 거쳐.. 띵리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뽀띠니마 종이라는 밀라레빠의 수행처에 몇개월 머무른다..
그처에 있는 밀라레빠의 다른 몇개의 명상동굴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스승과 다른 도반들은 성산 랍치로 들어가지만...
로첸 최니 쌍모는 빠담빠 쌍게의 성지 딩리 랑꼬르..찌브리를 찾아간다...
이 지역전체에 있는 모든 탑에 샵까르의 모습이 솟아나는 것을 본다..
그들은 티벳중부.. 라싸로 들어갔으며...
스승 빼마 갸쪼는 아주 정착할 곳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티벳의 오대산 리오 쩽가에 있는 구루린포체의 동굴..쌍약 닥이다..
그곳은 문수사리의 성지이다...
그리고..바로 옆에있는 롱첸빠의 수행성지..강리 퇴까르가 그들의 마음에 자리잡는다..
로첸 최니쌍모는 여기 쌍약 닥 동굴에서 샵까르의 환생자를 만난다...
거기서 그는 샵까르의 핵심수행법과 저작에 대한 관정과 구전을 받는다..
이 가르침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는다...
얼마 뒤.. 스승 빼마갸쪼가 열반을 하신다..
그의 스승 빼마갸쪼가 이곳에서 열반하기까지..
그는 이렇게 구루린포체와 밀라레빠..샵까르와 관계있는 수행처만을 찾아다니면서..
25년 정도를 스승과 함께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사람이 헤어지고나면 그 사람에 대한 향수가 있는 법이다..
그는 한동안 스승과 함께 했던 화려한 시간들이 한동안 생각났을 것이다...
그의 스승 빼마 갸쪼가 법문을 할때는 많은 대중이 모이곤 했는데...
많을 때는 10만명이 모인적도 있었다고 한다...
스승 빼마 갸쪼가 열반한 뒤로..그는 한곳에 정착하려했던 것 같다..
한동안 그는 겨울에는 쌍약 닥에 머무르고 여름에는 강리 퇴까르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따금..다른 스승을 만나.. 법을 받아 수행한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강리 퇴까르 아래에 있는 계곡에 슉쎕 비구니사원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티벳에서 가장 큰 비구니 사찰로 키워나가게 된다...
슉쎕사원이 지어진 후 30년이 지나는 동안...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지만..
10여년은 사원 뒷편에 있는 쌍약 닥 동굴과 강리 퇴까르에서 수행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예세쪼갤이 있었던 성지 조모 카렉으로 간다...
다시 그가 밖으로 나온 후로는..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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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생의 절반을 성지를 찾아 다녔으며...
나중에는 한곳을 선택하여 머물렀으니.. 그곳이 쌍약 닥과 강리 퇴까르이다...
그는 강리 퇴까르 밑에 슉쎕비구니사원을 지어 후학을 도왔으며...
강리 퇴까르에 올라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에게 강리 퇴까르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렇듯이 ... 롱첸빠(롱첸랍잠)에 대한 깊은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강리 퇴까르는 롱첸빠의 수행동굴이자...
모든 불교 경론의 결정체인..7보장과 닝틱얍시를 써내려간 곳이다...
그의 생몰 연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는 1852년에 태어나 1953년까지 사신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보다 24년 전인 1828에 태어나신 것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년도는 다르지만... 띠가 같음을 알 수 있다...
1828년은 로첸최니쌍모를 가장 가까이서 모신 제자의 증언에 따른 것이다...
그 제자는 뒤좀 린포체의 따님이시다...종사ㄹ켄쩨린포체에게는 고모이시다..
이 증언이 옳다면... 로첸 최니 쌍모는 126세까지 사신 것이 된다...
그의 후생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씨킴에서 태어난 제쮠 뻬말라.. 라싸에서 태어난 도ㄹ제 랍뗀이라는 두 분이다...
그러나 그 분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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