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8, 2014

승(乘) & 성지(聖地)

금강승은 대승에 비해 수승한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금강승은 대승에 비해 방편이 수승합니다...
방편이 수승하다는 것은.. 
견해가 수승하고...명상이 수승하고..행위가 수승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무명의 장애가 없으니..견해가 수승하고..
효과적인 방편이 다양하므로 명상이 수승하고...
어렵지 않게 도달하므로..행위가 수승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리한 지성이 있으므로 사람이 수승하다 하고...
3아승지겁에 도달할것을..단 한생에 도달할수있으니.. 시공이 수승하다 합니다...

대승과 금강승은 목적은 같지만.. 목적에 도달하는 방편이 다릅니다..
대승은 원인에서 출발하여 결과로 나아가지만...
금강승은 원인과 결과가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대승은 오계와 오온 등을 보지만..
금강승은 일체현상을 원시의 청정한 바탕과 분별하지 않으며..
대승은 두 진리를 말하지만...금강승은 둘을 차별없는 하나로 봅니다..
이처럼 견해가 다르듯이.. 명상이 다르고 행위가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대승의 보살은..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 씨는 싹이터서 공덕과 지혜의 두 자량을 모으면...
수많은 생을 거쳐서.. 불성이 자라서 개화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생 속에 깃들어있다는 불성의 원인에서 시작하여...
부처라는 결과로 점진적으로 나아갑니다...

금강승의 비드야다라에게.. 불성은 가감할것이 없는 완전함 그자체입니다..
나아간다거나.. 성취한다거나 도달한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공성의 견해라고하는 궁극적진리에 있어서는.. 대승과 금강승이 같습니다...
차이는 상대적 진리를 받아들이는데에 있습니다...
공성의 견해라는 측면에서는.. 중관이나.. 대수인이나..족첸이 다 같습니다..
차이는 현상을 공성과 상공화하는 하나로 보느냐...
미세한 수준이라도..현상이라는 것을 무언가 다른 것으로 분별하는냐에 있습니다...
....


승(乘)에 관한 다른 부분을 조금 더 얘기합니다..

승(乘)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곳에 있는 말을 빌려와보겠습니다...

``다르마의 목적까지 데려다주는 최선의 도구이므로.. 승(乘)이라 한다...
이 도구에 올라타는 순간..더할나위 없이 기쁘게 되므로..승(乘)이라 한다..
누구라도 여기에 올라타면 열반에 도달하므로.. 야나(乘)라 한다..``
...........................

얼마나 많은 승(乘)이 있고.. 어떻게 나누어질까요?

사람은 근기가 다릅니다....
부처님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설하였습니다...
팔만사천의 법이 있다지만...그 모든것은 세 가지 승에 포함될 것입니다..
원인..고행.. 변형..
닝마전승은 이것을 아홉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아홉으로 나눈다는 것은.. 세가지를 좀 더 자세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로 대비해보자면..
1,2,3은 원인승이고..4,5,6은 고행승이고.. 7,8,9는 변형승입니다..
고라는 원인에서 풀어가는 것이라서 소승과 대승을 원인승이라 하고...
고행은 행..작 유가의 세가지 외적 딴뜨라가 가진 속성을 말하는 것이고..
변형은 마하요가..아누요가..아띠요가(족첸)로 구분되는 세가지 내속승을 말합니다..
닝마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티벳불교 전승은..내속승만을 취급합니다..
1,2는 소승으로..3은 대승으로.. 4,5,6,7,8,9는 금강승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소승..대승..금강승으로 나누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듯합니다..
저울의 배분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기 때문입니다...
둘로 나눌 때는...1,2,3 경승(쑤트라)..4,5,6,7,8,9 속승(딴뜨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승(乘)의 차이란 무엇과 같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수리열매와 같습니다..
그 안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상수리열매가 싹이나서. 커다란 나무가되기까지의 전개과정은...
아홉가지로 나누는 다르마의 모습(9부승)과 닮아있습니다..
아홉가지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앞선 과정은.. 더 나아가는 과정의 토대가 됩니다...
근기는 처음부터 결정되어있지 않습니다...
서로 근기가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과거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누구나..1,2,3,4,5,6,7,8,9를 순차적으로 밟아 올라갈 것입니다..
누군가가는 과정도없이.. 아홉번째 것을 바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전생에 선행적인 과정을 밟아올라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성지(聖地)만 돌면 수행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가..?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달성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물의 청정한 본성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각한다는 것은.. 상념은 사라지고 대신 릭빠가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릭빠가 지배할 때... 일상적인 사물은 청정한 불국토로 보이고...
헤아리수 없는 수승한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성지 순례는...이와같이 청정한 불안으로 보기시작할 때 시작됩니다...
돌맹이와 흙..물..나무를 보는 것이 성지순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청학동이라는 곳이 지리산 어디엔가 있다고 합니다..
성지순례란... 보이지않는 이런 세계가 보이는데서 출발합니다..
달리 말하자면...대승의 5도가운데 자량도를 성취해야 합니다...
혹은...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공가행..불공가행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지순례가 확실한 성취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다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지만요...

두번째는.. 청정하고 고귀한 법을 받아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성지는 그러한 법을 닦기위한 장소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아지닌다는 것은...
전승법맥이 살아있는 스승으로부터 관정과 구전과 설명을 받아 수행하는 것입니다..
닦을 법이 없다면... 성지는 무의미합니다...

세번째는.. 그 곳에 오래토록 머물러서..그 기운과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머무르지 않는다면... 청정한 눈으로 본다하더라도..그림의 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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